청약 당첨땐 기존 집 2년내 팔면 돼…중도금 대출 12억까지
국토교통부가 윤석열 대통령 주재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파격적인 규제 완화책을 내놓은 것은 그만큼 최근 부동산 시장에서의 위기감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기 때문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거래 급감과 미분양 증가에 따른 건설 경기 둔화 속도가 과거 두 차례 경제위기 당시와 맞먹는 수준이라며 정부의 선제적 대응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이 같은 시장의 우려를 적극 수용해 정부가 시장 경착륙을 막기 위한 ‘규제 완화 종합세트’를 내놓은 것으로 풀이된다.
27일 윤석열 대통령 주재 제11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국토교통부와 금융위원회는 실수요자 보호와 거래 정상화를 위한 방안을 발표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최근 국내 건설산업과 부동산 시장은 경제 상황과 맞물려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11월 중 주거정책심의위원회를 열고 규제지역을 추가 해제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원 장관은 지난주 국토부 종합 국정감사에서 부동산 시장이 폭락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단정짓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날 바뀐 입장을 보이며 부동산 시장의 어려움을 언급한 것은 앞으로 추가 부동산 하락을 지켜보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윤 대통령 취임 이후 이미 두 차례 주거정책심의위원회(주정심)를 열고 사실상 지방 전 지역을 규제지역에서 해제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오는 11월 열리는 주정심에서는 서울과 수도권 핵심 지역 일부까지 규제 지역이 해제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은형 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주정심이 이렇게 자주 개최되는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올해를 2개월 남기고 또 주정심을 여는 것은 그만큼 정부가 규제 완화에 대한 의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는 서울과 경기 일부 지역 등 39곳은 투기과열지구로, 경기와 인천, 세종 등 60곳은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돼 있다. 규제지역으로 지정되면 주택 분양권의 전매가 제한되고, 청약 1순위 자격 요건이 강화되는 등 거래가 까다로워진다.
규제지역에서 벗어나는 지역의 경우 앞으로 매수세가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높아지는 셈이다.
원 장관은 또 “청약에 당첨돼 기존 주택을 팔아야 하는 1주택자의 경우 처분기간을 6개월에서 2년으로 연장하고, 중도금 대출 상한도 9억원에서 12억원으로 상향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규제 완화안은 최근 미분양이 늘어나며 공사가 진행 중인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장까지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사태까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올해 8월 말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은 총 3만2722가구로 작년 말(1만7710가구) 대비 무려 84.7% 늘어났다. 수도권의 미분양 주택은 8월 말 기준 5012가구로 작년 말 대비 3배 넘게 증가했다. 이처럼 미분양이 늘어나며 주택시장 전망이 악화되자 금융사들은 시행사들에 PF 자금을 대줄 때 추가 보증을 요구하거나, 리파이낸싱을 거절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정부가 청약 당첨자의 기존 주택 처분 기간을 늘리고, 중도금 대출 조건을 완화한 것은 꽁꽁 얼어붙은 분양시장의 심리를 녹이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금리 인상과 원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분양가 부담이 쉽게 낮아지지 않고 있다”며 “정부의 이번 조치는 청약 수요자의 대출 여력을 시장 상황에 맞게 현실화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금융위원회도 부동산 시장 경착륙을 막기 위해 파격적인 규제 완화책을 내놓았다. 이날 회의에서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최근 금리가 오르고 정책 여건이 변했기 때문에 금융위원회도 과감하게 규제를 풀겠다”며 “무주택자와 1주택자는 투기지역에서도 일괄 LTV를 50%까지 허용하고, 15억원 초과 아파트에 대한 주택담보대출도 허용하겠다”고 말했다.
15억원 초과 주담대 금지 규제는 문재인 정부 당시 2019년 ’12·16 대책’에서 발표됐다. 이 같은 규제는 국민의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헌법재판소에서 위헌확인 소송도 제기된 상태다. 또 정부가 고가주택 기준을 15억원으로 자의적으로 설정한 것과 관련해서도 비판이 일었다. 이은형 책임연구원은 “근거가 뚜렷하지 않았던 고가 주택과 관련한 대출 규제가 폐기된 것은 파격적”이라며 “부동산 규제 정상화의 상징을 보여주는 큰 사안”이라고 평가했다.
정부는 이와 함께 연말까지 재건축 안전진단 개선방안을 마련해 기존에 발표된 공급 대책을 뒷받침한다는 계획이다. 이와 관련해 국토부 관계자는 “안전진단과 관련해 구조안전성 비중을 어느 정도로 조율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같은 정부 대책에도 불구하고 높은 금리 수준으로 인해 얼어붙은 시장심리가 완전히 반전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성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대출 규제 완화로 15억원 초과 아파트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수 있다”며 “이번 정부 대책이 전반적 시장 분위기를 바꾸기는 어렵지만 하방 압력을 밑에서 받쳐주는 역할은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