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입자 못구해 잔금 못 치러”…넘치는 전월세 매물에 서울도 ‘역전세난’
# 분양받은 아파트에 간신히 입주한 김모씨. 입주 날짜가 다가오는데 원래 살던 집이 팔리지 않아 속만 태우다 결국 전세 바꾼 후 어렵사리 세입자를 구한 후 한숨 돌릴 수 있었다. 김씨가 새집 잔금일까지 세입자를 찾을 수 있었던 비결은 주변 시세보다 2000만원 낮춘 전셋값이다. 김씨는 “다행히 세입자가 들어와 무사히 잔금을 치렀지만, 어쩌다보니 팔자에 없던 다주택자가 됐다”고 말했다.
지난달 임대차3법 시행 2년이 도래하면서 전셋값 폭등에 대한 우려가 커졌으나, 실상은 기우에 그쳤다. 금리인상 여파로 전세수요가 떨어지면서 되레 집주인들이 세입자를 찾느라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3만4284건으로 새 정부 출범 초기인 3개월 전(2만6252건)보다 30.5% 늘어났다. 경기와 인천은 전세 매물 증가폭이 더 컸다. 석 달 전에 비해 경기(3만3240건→4만6732건)는 40.5%, 인천(8345건→1만1476건)은 37.5%씩 증가했다.
잇따른 금리 인상으로 이사 수요가 전반적으로 급감하면서 서울 등 수도권에서도 전·월세 매물이 쌓이고 있다. 대출 이자 부담으로 전세보다 월세(반전세 포함)에 대한 선호가 높아지며 전세 만기를 앞두고 세입자를 못 구해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역(逆)전세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전셋값이 제자리걸음하거나, 하락세를 보이면서 전셋값 자체를 5000만원이나 1억원 정도 싸게 내놓아 계약하는 경우도 허다하다는 게 중개업계의 전언이다. 서울 송파구 S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최근 전셋값은 하락하는 반면, 월세는 올라가는 추세”라면서 “주변 단지는 입주 초기에 워낙 싸게 전세 거래를 했었기 때문에 보증금을 올리지 못하고 오른 부분만 월세로 받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는 금리 인상에 따른 대출 이자 부담이 커진 영향이 크다. 기존 세입자는 재계약(갱신계약)하는 경우가 많고 이사 가야 할 경우에도 전세대출을 받아 이자 내느니 월세를 내는 게 부담이 더 낮아 반전세 수요가 급증한 것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전세금을 월세로 돌릴 때 적용하는 전·월세 전환율은 6월 서울 아파트 기준 4.2%로 4대 시중은행 전세대출 금리 상한선(5.95%)보다 낮다.
입주를 앞둔 단지도 매물이 쌓이고 있다. 지난달 31일 1000여 가구가 입주하는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 한 단지는 400가구가 임대차 매물로 나와 있다. 인근 공인중개업소는 “호가는 계속 떨어지는데 세입자가 안 나타나 잔금을 내야 하는 집주인들도 마음이 타들어 간다”며 “세입자들은 가격이 더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분위기”라고 현장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경기나 인천도 비슷하다. 이달 말 입주를 앞둔 경기 수원시 팔달구 ‘힐스테이트푸르지오 수원’은 전용 84㎡ 전세가격이 4억5000만 원 안팎이었지만 최근 3억7000만 원까지 떨어졌다.
한편 전국적으로 내년 입주 물량이 올해보다 더 늘어나는 점을 고려하면 역전세대란은 더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부동산원의 공동주택 입주예정물량 정보 자료에 따르면 내년도 입주예정물량은 올해보다 약 6만4000가구 증가한 41만 가구다. 2024년 상반기(6월까지)는 17만2000가구 수준으로 전망된다. 부산, 광주, 대전, 전북, 세종을 제외하면 내년 입주예정물량이 올해보다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량이 많은 특·광역시는 인천(8만2000가구), 서울(7만4000가구), 대구(6만3000가구) 등이다. 시군구별로는 경기 화성시(2만8000가구), 경기 양주시(2만6000가구), 충남 아산시(1만9000가구), 충북 청주시(1만8000가구), 경남 양산시(1만1000가구), 경북 포항시(1만 가구), 전남 광양시(7000가구) 순이었다.
정성진 어반에셋매니지먼트 대표는 “영끌족 중 이자 부담을 줄이려 자신은 빌라 월세로 살거나 수도권 외곽으로 이사 가고 자신이 보유한 집은 전세를 놓는 경우도 늘고 있다”며 “서울 등 수도권 중심부 임대차 매물이 더 쌓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