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웃픈 현실”…생애 최초 LTV 80% 확대에도 시큰둥 ‘문제는 DSR’
“이자 부담이 갈수록 커지는데, 수억원 대출을 받아 집 사는 게 맞는 걸까요?”
정부가 생애최초 주택구입자에 한해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80%까지 확대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집값 고점 인식과 더불어 대출금리 인상에 따른 원리금 상환 부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등이 겹치면서 규제 완화 혜택을 체감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정책 실효성을 제고하기 위해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6월 생애최초 주택 구매자에게 주택 소재 지역이나 소득, 주택가격 상관없이 60~70%를 적용했던 LTV를 80%까지 확대했다. LTV는 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받을 때 인정되는 자산 가치 비율이다. 기존에 서울에서 생애 최초 주택 구매자가 7억5000만원짜리 아파트를 구입하려면 LTV가 최대 50%가 적용돼 3억7500만원까지 대출받았다. 그런데 새 기준에 따르면, 한도가 80%가 적용돼 최대 6억원까지 가능해졌다.
그렇다면, 서울의 10억원짜리 아파트를 구매할 때 8억까지 대출이 가능할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대출 한도가 기존 최대 4억원에서 6억원으로 늘어나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즉, 10억원 아파트를 사더라도 대출한도가 6억원으로 제한된다. KB부동산이 발표한 지난달 10~20일 서울지역 아파트 매매가격을 조사한 결과, 중위가격이 10억9291만원으로 조사됐다. 이미 서울 아파트 절반 이상이 10억이 넘긴 상황에서 6억원을 대출받아 서울 내 아파트를 사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대출한도는 6억원이지만, 고소득자가 아니면 한도를 꽉꽉 채워 6억원의 대출 받는 차주도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소득으로 대출한도를 정하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40% 적용 규제가 우선 적용돼서다.
DSR은 모든 대출에 대해 원리금(원금+이자)을 연 소득으로 나눈 비율로 소득에 따라 대출 한도가 결정된다. DSR 40%를 적용하면 연간 대출 원리금 상환액이 연소득의 40%를 넘지 못한다. DSR 규제는 지난 7월부터 적용 대상이 종전 총 대출액 2억원 초과 차주에서 1억원 초과 차주로 확대됐다. 총 대출액이 1억원이 넘는 대출자들은 연간 원리금 상환액이 연소득 40%를 넘으면 추가 대출을 받을 수 없다. LTV 확대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내 집 마련, DSR규제에 발 묶여”
생애최초 주택구매자의 LTV가 완화됐으나 내집 마련에 나선 다수의 대출 수요자들은 은행 문턱을 넘지 못하고 발길을 돌리고 있다. 일부 은행에서는 LTV규제 완화에 대한 대출자들의 전화 문의가 이어졌으나 실제 대출 계약으로 이어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은행 관계자는 “LTV완화는 대출규제 완화라는 시그널을 주기엔 긍정적”이라면서도 “금리가 빠르게 오른 상황에서 수도권 집값이 여전히 높은데다 거래가 활발하지 않은 상황 등이 반영돼 대출 증가는 미미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리 인상에 따른 이자 부담도 만만치 않다. 지난달 말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의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는 4.44~5.63%까지 올랐다. 연 금리 5%로 만기 40년 조건으로 6억원을 대출받으면 월 상환액이 289만원에 달한다. 또 최근 미국 중앙은행이 두 차례 ‘자이언트스텝'(기준금리 0.75%p 인상)을 단행했다. 이에 한국(연 2.25%)과 미국(2.25∼2.50%)의 금리가 역전됐다. 연말까지 한국은행의 추가적인 기준 금리 인상이 예상되면서 대출이자 부담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LTV와 DSR 규제도 함께 완화해야 부동산 관련 대출 규제 완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그런데 정부 입장에서는 가계부채가 한국경제의 최대 뇌관으로 주목되는 상황에서 DSR 완화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특히 DSR 규제는 국가간 은행 신용도 기준이 되기 때문에 우리나라 독자적으로 완화하기도 사실상 어렵다.
한 시중은행이 29세 청년을 연봉 수준별로 나눠 서울 내 투기지구 9억원짜리 아파트를 구입하기 위해 대출(연 4.30%)받는 경우를 시뮬레이션 한 결과를 보면, LTV 80%를 적용하더라도 DSR 규제에 따라 연봉 수준별 대출가능금액은 연봉 3000만원인 차주는 2억200만원, 연봉 5000만원인 차주는 3억3600만원, 연봉 7000만원인 차주는 4억7100만원으로 나타났다.
생애 첫 주택 구입자에 한해 LTV 규제를 완화 한 것처럼 DSR도 적용대상을 세분화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LTV가 완화됐지만 DSR 규제에 막혀 실제 혜택을 보는 무주택자는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DSR 규제는 소득에 의해 대출한도가 정해지기 때문에 자칫 기존의 정책 목표와 달리 고소득층에게만 규제 완화 효과가 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대다수는 만약 DSR까지 완화된다 해도 최근 고물가와 고금리에 한은의 추가 금리 인상까지 예고된 상황에서 주택 시장의 거래 절벽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수 밖에 없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