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or 리모델링”…셈법 복잡해진 1기 신도시

재건축 규제 완화 기대감이 1기 신도시 주민들간 갈등을 키우는 모습이다. 재건축 가능성을 낮게 본 주민들이 리모델링 조합을 만들어 추진 중이었는데 비대위를 중심으로 재건축사업 전환을 요구하고 있어서다. 리모델링 조합 설립을 눈 앞에 둔 단지들에서도 재건축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부동산 및 주택업계에 따르면,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가 110대 국정과제로 내놓은 부동산정책에는 1기 신도시 재건축 활성화를 위한 1기신도시 특별법 제정으로 10만가구를 공급한다는 내용만 담겼다. 당초 당선인은 주택법과 별도로 ‘리모델링 추진법’ 제정과 함께 리모델링 수직과 수평 증축 기준을 정비하겠다고 공약했으나, 막상 발표된 국정과제에는 리모델링 공약 이행안이 빠지면서 갈등을 부추긴 측면이 있다.

당초 1기신도시에는 재건축 보다 리모델링 추진아 더 활발했었다. 용적률이 높은 고밀도 단지가 많았던 만큼, 저밀도 단지에 비해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판단에 일찌감치 리모델링으로 눈을 돌렸기 때문이다. 1기 신도시의 평균 용적률은 일산이 169%로 가장 낮다. 이어 분당 184%, 평촌 204%, 산본 205%, 중동 226% 순이다. 용적률이 200%가 넘으면 각종 기부채납이나 임대주택 의무 조성, 초과이익환수제(3000만원 초과시 10~50%) 적용 등 재건축을 통한 분양수익 등 사업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게 정비업계의 중론이다.

정부 출범을 앞두고 분당, 일산, 평촌, 중동, 산본 등 수도권 1기 신도시 부동산이 들썩이고 있다. 재건축 등 부동산 규제 완화 기대로 주요 단지 매매가가 연일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R114 자료를 보면 1기 신도시 아파트는 대선 전인 올 1월 1일부터 3월 9일까지 0.07%의 미미한 상승폭을 보였지만, 대선 이후 분위기가 달라졌다. 3월 10일부터 4월 22일까지 0.26% 올라 상승률이 3배 이상 높아졌다. 같은 기간 서울 아파트 매매가 상승률이 0.25%에서 0.08%로 낮아진 것과 대비된다.

잠잠하던 평촌, 일산신도시 매매 시장도 들썩이는 분위기다. 안양시 동안구 호계동 목련7단지 전용 133㎡는 지난 3월 17억원에 새 주인을 맞았다. 올 1월 거래 가격(14억8000만원)과 비교하면 두 달 만에 2억2000만원 뛰었다. 고양시 일산서구 주엽동 문촌17단지신안 전용 172㎡도 13억5500만원에 거래돼 신고가를 경신했다. 지난 3월 초 거래 가격(12억원)보다 1억5000만원가량 올랐다. 군포 산본신도시 산본동 주공11단지 전용 44㎡도 최근 5억500만원에 거래돼 직전 거래 가격(3억7000만원) 대비 1억원 넘게 상승했다.

윤 대통령 당선인은 ‘1기 신도시 정비사업 촉진 특별법’을 제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특별법에는 용도지역 종상향을 통한 용적률 최고 500% 확대, 안전진단·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완화, 정비사업 인허가 절차 간소화 등의 내용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재건축 사업을 할 때는 용적률이 낮아야 추가로 지어 분양할 수 있는 주택 수가 늘어난다. 용적률이 높으면 그만큼 조합원 분담금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1기 신도시 특별법이 제정돼 용적률이 높아지면 재건축이 얼마든지 가능해진다.

재건축에 속도를 내는 단지도 부쩍 늘었다. 군포시 산본동 한라주공4단지 1차 재건축 추진준비위원회는 최근 군포시청에 예비안전진단 신청서를 제출했다. 안전진단은 재건축 사업의 첫 단계로 정밀안전진단, 적정성 검토 등의 절차를 통과해야 재건축 사업이 비로소 시작된다. 이후 정비구역 지정, 조합설립인가, 사업시행인가, 이주, 착공 등의 단계를 거친다. 이 단지는 1992년 4월 준공돼 재건축 연한인 30년을 넘겼다. 재건축이 마무리되면 1900가구 대단지로 탈바꿈할 전망이다. 분당신도시 서현동 시범한양, 우성, 삼성한신, 현대 등 4개 단지도 지난해 재건축 추진준비위원회를 구성해 재건축에 속도를 내는 중이다.

1기 신도시 재건축 곳곳 암초

1기 신도시 재건축 사업이 기대만큼 속도를 낼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특히 분당, 일산은 재건축 사업 첫 단계인 도시주거환경정비 기본계획조차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다. 인수위 부동산TF에서는 1기 신도시 재건축 단지 용적률을 일단 300%까지 올리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별법을 두고 형평성 논란도 나온다. 1기 신도시 외에도 정비사업이 시급한 수도권 단지가 많은데 1기 신도시에만 특혜를 주는 것은 다른 지역 주민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1기 신도시 특별법을 추진한다고 해도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버티는 국회를 순조롭게 통과할지는 알 수 없다.

재건축보다 리모델링이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아파트를 허물고 새로 짓는 재건축과 달리 리모델링은 아파트 구조를 유지하면서 주거 면적을 키우거나 층수를 올려 주택 수를 늘리는 방식이다. 주거 불편 원인인 설비, 마감재를 개보수하고 지하주차장을 새로 만들거나 넓힐 수 있다. 준공 30년 연한을 넘어야 추진 가능한 재건축과 달리 리모델링은 준공 15년에 B등급 이상이면 수직증축, C등급 이상이면 수평증축이 가능하다. 재건축 사업 기간, 비용 부담이 큰 만큼 용적률이 200%를 넘으면 재건축보다 리모델링이 유리한 측면이 있다.

리모델링에 속도를 내는 단지들이 적지 않다. 성남시는 최근 분당구 정자동 느티마을3·4단지 리모델링 사업계획을 승인했다. 앞서 지난해 정자동 한솔마을5단지, 구미동 무지개마을4단지에 이어 분당신도시 세 번째 리모델링 사업계획 승인이다. 1995년 준공된 이 단지는 수평, 별동증축 방식으로 리모델링이 이뤄진다. 3단지는 770가구에서 873가구로, 4단지는 1006가구에서 1149단지로 탈바꿈한다. 성남시는 노후 공동주택 시설 개선을 위해 2014년부터 공모를 거쳐 리모델링 희망 단지에 조합설립, 안전성 검토 비용을 지원해왔다.

고양시도 일산 리모델링 사업 활성화를 위해 용적률을 완화해주기로 했다. 2종 일반주거지역 용적률 상한은 250%, 3종 일반주거지역은 300% 이하로 상향됐다. 이번 조치로 강선14단지, 문촌16단지 등 리모델링 사업이 속도를 낼 전망이다. 산본신도시에서도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18개 아파트 단지가 올 초 ‘산본 공동주택 리모델링연합회’를 출범시켰다. 군포 금정동 율곡주공3단지가 최근 안전진단을 통과하는 등 리모델링에 속도를 내는 중이다. 이 단지는 전용 51~59㎡, 총 2042가구 대단지로 리모델링을 통해 2348가구로 거듭나게 된다.

업계는 리모델링 활성화를 위해선 수직증축 기준 정비와 리모델링의 법적 가이드라인격인 ‘리모델링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요구하고 있다. 수직증축은 정부가 2014년 주택법을 개정하면서 허용했지만 현재까지 통과한 곳은 서울 송파구 성지아파트 단 1곳뿐이다. 지반 등 구조안전성을 살피는 2차 안전성 검토가 까다로워서다. 수직증축은 사업성을 담보하지만, 안전성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기술검증에 대한 정책적 제시가 안 된 상태다. 여기에 내력벽철거 허용 여부도 여태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리모델링특별법 제정도 시급하다. 현행 리모델링에 대한 규정은 대부분 주택법을 통해 정해놨는데 주택법의 주 대상은 재건축 주택이다. 이로 인해 리모델링에 대한 인허가 진행 시 불필요한 제반사항과 절차들이 포함되면서 시간과 비용을 키우고 있다는 문제가 제기된다. 주택법에서는 신축허가와 리모델링을 구분하지 않고 ‘사업계획 승인’을 통해 인허가가 진행하고 있어 리모델링 사업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리모델링 전문가들은 주택법과는 독립적인 리모델링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요구를 꾸준히 해왔다. 이 법률안은 현재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같은 당 김병욱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 한 상태이며 국회에 계류돼 있다.

재건축 바람이 강하게 불면서 1기신도시 리모델링조합들은 고심에 빠졌다. 재건축조합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존 리모델링조합을 해산 후 발족하면 되지만 매몰 비용을 떠안아야 한다. 조합원의 분담금이 늘어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리모델링조합을 설립한 안양시 동안구 호계동의 한 아파트 단지에선 매몰비용을 떠안더라도 리모델링 해산 이후 재건축조합을 다시 설립하자는 의견이 나온다. 평촌동의 또 다른 리모델링 추진 단지에서는 조합 설립을 앞두고 지금이라도 재건축조합으로 선회해야 한다는 의견과 대립하고 있다.

차기 정부가 1기 신도시 용적률을 높여준다고 해도 당장 재건축이 속도를 내기는 어렵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신도시 역세권 대단지 중에서 용적률이 낮다면 리모델링 추진을 고려해볼만 하다고 전문가들이 판단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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