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단지 리모델링 부러웠는데”…갑자기 무산됐다니, 대체 무슨 일?
정부가 재건축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하면서 수도권 정비사업 시장에서 리모델링이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까다로운 규제를 피해 리모델링을 선택한 아파트 단지들이 속속 재건축으로 돌아서는 가운데 건설사들이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이미 확보한 리모델링 시공권을 포기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9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한화 건설부문은 최근 경기 성남시 매화마을2단지 리모델링 조합에 공문을 보내 사업참여를 철회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8월 수의계약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한 지 8개월 만이다. 매화마을2단지 리모델링은 수평·별동 증축을 통해 가구 수를 현재 1185가구에서 1339가구로 늘리는 사업이다. 조합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조합 관계자는 “조합과 사전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사업참여 철회를 통보했다”며 “수개월 동안 사업이 지연된 탓에 손해배상을 청구했다”고 전했다.
한화건설은 서울 광진구 상록타워 리모델링 사업에서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지만 사업에 참여할지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한화 건설부문 관계자는 “정책상 리모델링 사업이 재건축보다 규제완화에 소극적이고, 공사비가 올라가면서 사업성이 초기 시점 대비 많이 변하고 있다”며 “신규 사업은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리모델링 분야 준공 1위 실적을 보유한 쌍용건설도 최근 서울 성동구 옥수극동 아파트 리모델링 사업을 철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나섰다. 한강변 900가구 규모인 이 아파트는 수직증축 리모델링을 통해 1000가구 이상 단지로 탈바꿈할 계획이었다. 쌍용건설 관계자는 “공사비가 많이 오른 데다 암반 지형으로 사업 난이도도 높은 곳”이라며 “사업을 계속 진행할지 여부를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2~3년 전만 해도 건설사들은 강력한 재건축 관련 규제로 일감이 줄어들자 전담팀을 꾸리는 등 적극 리모델링 수주에 나섰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 재건축 관련 규제가 잇따라 완화되자 분위기가 180도 바뀌었다.
준공 후 15년이 지난 아파트의 기본 골조만 남긴 채 가구당 면적을 늘리고 별도 동을 짓는 리모델링은 재건축보다 시공이 어렵고 공사 단가도 높다. 한 대형 건설사 정비사업 담당 임원은 “공사 단가는 높은데 현행법상 가구 수는 기존 대비 최대 15%만 늘릴 수 있어 일반분양 물량을 분양해 수익을 내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리모델링을 추진 중인 아파트 단지들이 재건축으로 방향을 트는 움직임도 가속화하고 있다. 송파구 송파동 ‘거여 1단지’는 초기 분담금 부담과 조합 운영비 논란 등으로 인해 임시 총회를 열고 리모델링 사업 중단을 결정했다. 풍납동 ‘현대 강변’도 지난 2022년부터 시공사 선정에 나섰으나 지금까지 입찰한 건설사가 한 곳도 없어 최근 조합해산 절차에 돌입했다. 성동구 대림1차 아파트와 강동구 리모델링 1호인 프라자 아파트는 리모델링 조합을 해산하고, 본격적인 재건축 절차에 들어가기까지 했다. 강남구 대치2단지의 경우 일부 소유주들이 지난 1월 강남구청을 찾아 리모델링 조합이 해산 여부를 결정하는 총회를 열 수 있도록 행정지도를 해달라며 민원 요청을 넣었다. 1기 신도시에서 리모델링을 추진 중인 단지들도 노후계획도시 특별법 이후 재건축으로 선회해야 한다는 주민 반대 의견이 잇따라 제기되며 내홍을 겪고 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리모델링 조합의 해산 여부를 둘러싼 내부 갈등은 올해 계속될 전망이다. 조합 지도부가 원하지 않더라도 일정 기한 안에 해산 결정 총회를 열어야만 하는 현행 법 때문이다. 2020년 개정된 주택법에 따르면 재정비 사업 조합은 설립 인가를 받은 날부터 3년이 되는 날까지 사업계획승인을 받지 못하면 총회 의결을 거쳐 해산 여부를 의무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서울에선 기존 76개 리모델링 추진 단지 중 약 23곳이 올해 안에 조합 해산 결정 총회를 열어야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