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빛 우리 동네, 녹지 갖춘 IT허브 된대”···준공업지역 해제 나선다는 이곳 ‘들썩’
영국 런던 킹스크로스역 일대는 1850년엔 제조·물류 중심지였지만 산업 쇠퇴로 1970년엔 마약과 매춘, 범죄가 난무하는 낙후 지역으로 전락했다. 이같은 암흑기는 2000년대 들어 런던광역시가 대규모 복합 개발을 추진하며 끝이 났다.
석탄창고였던 콜 드롭스 야드는 복합쇼핑몰로, 물품 하차장이었던 그래너리 빌딩은 대학 캠퍼스·창업시설로 각각 탈바꿈 했다. 구글·메타를 비롯한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이 찾는 업무지구와 배후 주거시설도 조성됐다. 덕분에 이곳은 업무·주거·상업·문화·교육시설이 어우러진 활력 넘치는 도시로 변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27일 ‘서남권 대개조 구상’을 발표하며 “런던 콜 드롭스 야드 일대가 서남권 미래의 전형적인 모습이 될 것”이라며 “제조업 중심 규제를 개선하고 용적률 인센티브를 제공해 산업과 주거, 문화, 녹지가 공존하는 미래 융복합 산업공간으로 혁신하겠다”고 말했다.
서남권은 영등포, 구로, 금천, 강서, 양천, 관악, 동작 7개 자치구를 일컫는다. 이곳은 1960~70년대 소비·제조 산업 중심지였다. 하지만 1980년대 수도권 규제가 본격화하고, 지식·첨단산업으로 산업구조 자체가 변하며 쇠락하기 시작했다. 제조업 중심의 준공업지역 규제가 여전히 계속되며 서남권 일대는 건물 노후화, 기반시설 부족 문제가 누적된 상황이다.
오 시장은 이에 “서남권 대개조 초점은 준공업지역을 해체하기 시작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그간 준공업지역 해체에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혹시 제조업을 일으킬 필요가 생기면 한번 해제한 걸 다시 활용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이런 상황은 극히 희박해졌고 서울 산업구조가 지식·IT·창조산업 중심으로 바뀌었다”고 밝혔다.
준공업지역 해체는 용도지역을 아예 변경하는 방안과 기존 규제의 체질을 바꾸는 방안으로 나눠 추진한다. 먼저 산업혁신구역, 공간혁신구역을 적극 지정한다. 구로구 온수산업단지, 금천구 공군부대 용지가 대표 후보지로 거론된다. 온수산업단지는 고도제한을 폐지하고 첨단제조업 중심으로 개발계획을 내년에 수립한다. 금천 공군부대는 도심형 부대로 바꾸되 첨단산업과 스타트업 지원공간, 도심형 주택 집적지로 개발할 방침이다.
구로기계공구상가, 구로중앙유통단지처럼 과거 수도권 산업 유통거점 역할을 하던 대형시설은 도심 물류와 미래 업무기능이 융합된 핵심산업 거점으로 바꾼다. 맞춤형 사전기획과 용적률 인센티브를 지원하겠다는 게 서울시 입장이다. 관악구 서울대 주변에는 ‘관악S밸리 벤처창업 거점’을 조성한다. 테헤란로와 G밸리는 잇는 스타트업 클러스터로 육성하는 구상이다. 내년 사업 타당성 조사를 할 예정이다.
지하철 영등포역 인근처럼 도심과 대규모 주거단지가 이미 들어선 곳은 용도를 상업지역과 준주거지역으로 각각 바꾼다. (용도지역을 높이는) 종상향을 하지 않아도 준공업지역 안에서 정비사업이 충분히 이뤄지도록 조례 개정도 추진한다.
과거 공장 용지에 무분별하게 아파트를 짓던 것을 막기 위해 공동주택 건설할 때는 용적률을 250%만 허용했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를 최대 400%까지 올릴 수 있게 조례를 바꾼다. 공장과 주택을 각각 분리해서 짓도록 만든 조례도 개정을 추진한다. 주거, 산업, 문화시설이 한 건물에 복합 개발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지난 2008년 오 시장이 서남권 르네상스를 추진할 당시 주거 혁신만 추진했던 것과 차별화되는 접근법이다.
1990년대 중반 지어진 노후 단지가 많은 강서구 가양·등촌 택지지구는 노후계획도시 특별법이 적용 가능한지 살핀다. 저층 주거지는 모아타운 사업을 적극 추진한다. 이미 모아타운 대상지 81곳 가운데 30곳이 서남권에 밀집된 상황이다.
규제를 완화하는 대신 녹지, 수변, 문화, 여가 공간을 골고루 갖추도록 유도한다. 서남권을 대표하는 간선도로인 국회대로와 서부간선도로는 상부를 비우고 녹지공간을 조성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 외에도 마곡지구의 서울식물원과 한강을 연결하는 강서구 궁산~증미산 일대의 선형 녹지 네트워크도 2026년 완공할 예정이다.
둔치공간이 부족해 수변을 활용하기 어려운 지역에는 수상공원을 만든다. 미국 뉴욕 리틀아일랜드의 수상 피어파크가 본보기다. 봉천천, 도림천 같은 복개하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해 자연성을 회복할 방침이기도 하다. 안양천에는 오는 2025년까지 수변테라스와 쉼터, 캠핑장을 조성한다.
오 시장은 “서남권을 시작으로 권역별 도시 대개조 시리즈가 진행될 계획”이라며 “도시공간과 시민의 삶, 산업경제, 교통 인프라까지 도시 전체를 획기적으로 혁신하겠다. 이를 통해 서울의 도시 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다”고 말했다. 오는 3월에는 서북권과 동북권 대개조 전략을 발표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