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해가던 ‘산업화 성지’의 부활…젊은 일꾼 10% 늘어난 비결 뭐길래

영국 북부 도시인 맨체스터는 산업혁명의 발상지다. 세계 최초의 상업용 증기기관차가 이곳을 달렸고, 면직물 산업 발달로 19세기 최고의 공업도시가 됐다. 최근 방문한 맨체스터에선 그 자부심이 느껴졌다. 거리와 건물은 물론 대중교통 곳곳에 ‘노란 꿀벌’ 형상이 새겨져 있다. 열심히 일하는 꿀벌은 산업혁명 시대 일꾼을 상징한다.

대중교통 정책도 ‘꿀벌 네트워크(Bee Network)’라고 부른다. 노동자들 출·퇴근길을 편하게 이어주는 게 핵심이란 취지다. 다만 종착지 모습은 크게 달라졌다. 과거 일꾼들이 제조 공장으로 향했던 것과 달리 현재 일꾼들은 디지털·미디어·첨단소재·생명과학 기업에 종사한다. 맨체스터 바로 옆 도시인 샐퍼드(Salford)에 조성된 ‘미디어시티’가 대표적인 업무지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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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북부권역 샐퍼드시에 조성된 미디어시티 전경

맨체스터 도심에서 꿀벌 모양이 새겨진 트램을 타니 20분 만에 미디어시티에 도착했다. 이곳은 2011년 BBC 북부 방송국이 이전해오며 ‘천지개벽’했다. BBC를 필두로 ITV, 미디어컴 같은 대형 방송업체가 속속 둥지를 틀며 유럽 최대 수준인 50억 파운드 규모의 디지털·미디어 클러스터로 성장했다. 일자리가 생기니 샐퍼드대학도 이곳에 추가로 캠퍼스를 열었다. 미디어 제작, 증강·가상현실, 애니메이션을 비롯한 스타트업을 품기 위한 신규 오피스와 주택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1만개에 달하는 디지털·미디어 기업이 이곳에 생긴 건 광역 맨체스터 연합기구(GMCA)가 운영하는 투자유치청(MIDAS) 영향이 컸다. 라비 바닷 GMCA 분권협상 총괄은 “MIDAS는 다양한 기업이 GMCA로 이전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며 “잠재적 투자자를 위한 시장정보, 부동산·채용·교육 컨설팅, 네트워크를 제공해 리스크를 줄여줬다”고 밝혔다.

산업혁명 성지였지만 제조업 쇠퇴로 위기를 겪은 맨체스터가 2011년 이후 영국 2대 도시로 당당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미디어·신소재·생명과학 같은 고부가가치 산업 중심으로 체질 전환에 성공해 고질적인 인구유출 문제도 풀어냈다. 그 배경에는 맨체스터와 샐퍼드를 비롯한 북부권역 10개 도시가 자발적으로 모여 영국 최초의 광역 지방정부 연합기구를 2011년 설립한 것이 주효했다.

영국 북부권역 샐퍼드시에 미디어시티가 조성된 이후 주변에 신규 오피스와 주택단지가 들어섰다.
영국 북부권역 샐퍼드시에 미디어시티가 조성된 이후 주변에 신규 오피스와 주택단지가 속속 생겨나고 있다.

이전까진 런던광역시를 제외하고 영국에 광역자치단체 규모의 지방정부가 없었다. 지방행정이 기초 지자체 위주로 작게 분절돼 있던 것이다. 데이비드 마운틴 왕실도시계획연구소(RTPI) 연구원은 “영국 남부권역이 런던을 중심으로 성장하니, 산업혁명 이후 쇠락해가던 북부권역 10개 도시가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자는 차원에서 뭉쳤다”며 “광역행정을 빌미로 중앙정부 예산을 더 많이 가져오고, 경제적 투자를 받기 위해 합심한 것”이라고 했다.

앤드류 웨스트우드 맨체스터대 교수도 “GMCA는 중앙정부와 2014년부터 지금까지 7번에 걸친 협상을 통해 권한을 계속 이양받고 있다. 2017년에는 첫 번째 직선제 시장도 선출했다”며 “경제와 산업의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역량이 커지는 셈”이라고 말했다. 일례로 GMCA는 기존 섬유·의류산업이 그래핀 같은 최첨단소재 관련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자금을 지원한다. 장기적으로는 맨체스터 일부 구역을 ‘그래핀 시티’로 만들기 위해 맨체스터대와 협업 중이다.

의료와 제약 같은 생명과학 분야를 키우는 데도 GMCA 투자기금이 쓰인다. 생명과학 연구개발 센터인 앨들리 파크(Alderley Park)를 위한 투자기금을 만들어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데 쓰는 식이다. 이는 GMCA가 중앙정부로부터 보건·복지 예산(60억 파운드 규모)의 통제권을 이양받은 덕분에 가능했다.

초고층 고밀개발이 진행된 영국 맨체스터 도심인 캐슬필드, 딘스게이트 일대의 전경
영국 맨체스터 도심인 캐슬필드·딘스게이트 일대는 초고층 고밀개발이 한창이다.

신규 개발은 주로 맨체스터와 샐퍼드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맨체스터 도심인 딘스게이트 일대에는 초고층 복합단지가 속속 들어서고 있다. 나머지 도시들의 반발은 없냐는 질문에 바닷 총괄은 “맨체스터 의존도가 워낙 높기 때문에 일단 중심부부터 성장하는 게 중요하다는 인식이 있다”고 답했다. 다만 꿀벌 네트워크라 불리는 대중교통 노선을 확대해 지역 접근성을 높이는 식으로 균형 발전을 추진한다. 특히 내년까지 10개 도시를 버스 노선으로 모두 연결할 계획이다. 기존 민간 버스회사가 지나지 않는 도시들을 균형 발전 차원에서 지원하는 것이다.

이 같은 광역화 정책으로 인구유출이 멎고 도리어 늘었다고 GMCA는 강조했다. GMCA 관계자는 “2021년 GMCA 인구는 약 287만명으로 2011년 인구조사 대비 약 19만명(6.9%)이 늘어났다”며 “이는 1970~1980년대 인구가 급속도로 줄어들던 것과 대비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특히 같은 기간 맨체스터시는 인구가 9.7%, 샐퍼드시는 15.4% 증가하며 영국 주요 도시 가운데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며 “젊은 경제활동인구가 찾아와 활력을 되찾은 게 주요 요인이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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