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가 지목하는 ‘주택 부족’…전문가들은 3년 뒤를 걱정하는데
“불과 1년여 전만해도 재개발 조합이 시공사를 선정할 때 4~5개 대형건설사들이 사업시행인가를 축하하는 현숙막을 내걸었다. 이제는 서울 대규모 사업지도 수의계약으로 시공사를 정할 정도로 건설사들이 몸을 사리고 있다”(정비업계 관계자)
부동산시장이 침체기를 지나 기지개를 켜는 모양새이지만 건설사들은 여전히 바짝 엎드린 채 신규사업을 외면하고 있다. 고금리와 고물가에 따른 사업성 악화에 수주 기피 현상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13일 대한건설협회의 ‘월간 건설경제동향’에 따르면 지난 4월 건설사들의 주거용 건축(주택)수주액은 3조4722억원으로 전년동월(8조7367억원)대비 절반에도 못 미쳤다. 지난해 주택 수주액이 역대 최고를 기록한 데 대한 기저효과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전혀 그렇지 않다. 올 들어 4월까지의 누적 주택수주액은 2014년 이후 최저치다. 글로벌 금융위기발(發) 주택시장 침체가 아직 완전히 회복하지 못하던 당시와 비슷한 수준인 것이다.
공공부문은 그나마 버텨주고 있다. 1~4월 공공주택수주액은 9454억원으로 전년동기(8158억원) 대비 조금 늘었다.
급격한 감소는 민간주택 부문에서 발생했다. 공공주택 시장의 최소 10배가 넘는 민간주택의 수주액은 14조2699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44.5% 감소해 절반 수준이 됐다. 역시 2014년 이후 9년만에 최저치다. 건설사들의 민간 주택수주액이 사무실, 점포, 공장, 창고 등 비주거용 건축 수주액(16조7964억원)보다 적은 것은 이보다 더 오래된 2013년 이후 10년만이다.
공종별로는 재건축과 신규주택의 수주액이 올해 각각 3조 2465억원과 5조9038억원으로 작년동기대비 53%, 61%씩 급감했다. 재개발 수주는 작년 4조8220억원에서 올해 5조4867억원으로 소폭 올랐는데, 이는 2월 광주 광천동 주택재개발정비사업(1조7000억원·현대건설), 4월 강북5구역 공공재개발사업(3000억원·DL이앤씨) 등 굵직굵직한 재개발사업 수주가 몇차례 있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주택수주액이 급감한 것은 사업성 악화로 건설사들이 수주를 회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철환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주택시장 침체, 고금리, 공사비 상승 등 악재에 건설사들이 새로운 사업을 수주하기보다는 기존에 수주해놓은 곳들의 공사를 마무리하는 데 집중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김 연구위원은 “금리 인하 등 거시적 변수의 변화가 있지 않는 이상 당분간 수주침체는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 대형건설사 고위 관계자는 “주택사업에선 5~6년간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수주를 이미 해놓은 상황”이라며 “그동안엔 최대한 사업성이 뛰어난 곳으로 선별적으로만 수주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부동산 경기가 좋았을 때 적극적으로 수주전에 나선 것은 이미 옛날 이야기”라며 “우리 회사 수주팀의 최근 주업무는 시행사 등 사업주체를 만나 사업비용 인하를 ‘읍소’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향후 주택공급이다. 수주 물량이 줄어든만큼 향후 시장에 공급될 주택 수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수주와 더불어 주택공급의 선행지표인 인허가·착공 실적이 곤두박질치고 있는 점은 향후 공급대란 우려를 더욱 키우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주택건설 인허가 실적(1~4월 기준)은 12만3371가구로, 2013년 이후 가장 적은 수치를 기록 중이다. 올해 주택착공실적(6만7305가구)은 2010년(6만6784가구) 이후 무려 13년만에 최저치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향후 5년 정도 공급 공백기가 올 수밖에 없는만큼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폐지 등 재건축 규제 추가 완화를 통해 부동산 시장에 ‘공급 확대 시그널’을 줘야 한다”며 “3기 신도시 주택용지 비중과 용적률을 더 늘리는 것도 향후 공급대란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