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피하려면 … 등기부등본 적어도 4번 확인하세요
전세사기와 보증금 미반환 사고가 전국적으로 번지고 있다. 정부가 특별법을 만들어 지원 대책까지 발표했지만 기준이 까다로워 대상이 되기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세 제도는 복잡하고 허점이 많아 작은 부주의가 자칫 큰 금전적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전세금은 대부분 세입자에겐 ‘전 재산에 가까운’ 목돈인 경우가 많다. 이 같은 이유 때문에 전세 계약 전후에 확인해야 하는 사항들을 반드시 챙겨야 한다. 전세 기획 사기와 조직적 범죄를 완전히 막긴 어렵지만 큰 피해를 보는 것만은 어느 정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매일경제가 세입자들이 보증금을 지키기 위해 전세 계약 단계별로 챙겨야 하는 문제들을 정리해봤다.
최근 잇따르는 전세 임차인의 피해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집주인, 중개사, 감정평가사 등이 가담해 조직적으로 임차인을 속인 사례(선순위 저당권이 있는 경우)와 집주인이 무리하게 갭투자(전세를 끼고 매입)한 후 가격이 내려가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한 사례다. 후자는 이른바 ‘깡통전세’ 사례다.
특히 전세가율(집값 대비 전세 가격의 비율)이 급격히 상승한 지역이 늘고 있다는 점 때문에 깡통전세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최근 3개월간 전국 아파트 전세가율은 70.3%다. 대개 부동산업계에서는 전세가율이 70%를 넘으면 깡통전세 위험 신호로 본다. 연립·다세대주택만 놓고 보면 전국 전세가율은 79.6%까지 올라간다. 세종(105.9%), 충남(100.7%)은 100%를 넘어섰다. 이미 전세보증금이 집값보다 더 높아져 있다는 뜻이다. 하반기 부동산 시장의 뇌관이 역전세와 전세보증금 미반환 사고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렇다면 전세 계약 전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바로 계약할 물건과 임대인에 대한 조사다. 먼저 전세로 살고 싶은 집의 등기부등본을 떼어보고 ‘선순위채권’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선순위채권이 있으면 집이 경매에 넘어갈 경우 이 권리에 대한 원리금 지급이 먼저 이뤄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내 보증금을 돌려받을 권한이 ‘후순위’로 밀린다는 뜻이다.
선순위채권은 등기부등본 갑구와 을구에 존재한다. 저당권, 근저당권, 가압류, 담보가등기, 경매개시결정등기, 전세권이란 단어가 혹시 있는지 찾아야 한다. 그동안 대부분 언론에선 근저당이나 가압류 정도만 예시로 드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나머지 권리도 경매에서 선순위채권이 될 수 있다. 만일 이 단어들이 등기부등본에 있고, 그 금액과 전세보증금의 합계가 매매가격의 60~70%를 넘는다면 경매를 진행한 후 돌려받을 수 있는 돈이 없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위 6개 단어 말고 등기부등본 갑구에 ‘신탁등기’라는 단어가 나와도 주의해야 한다. 이 사례는 집주인이 주택을 지으면서 신탁회사(대개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았을 때에 해당한다. 실질적인 집주인이 신탁회사이기 때문에 전세 계약을 할 때는 이들의 동의가 필요하다. 반드시 신탁원부를 발급받은 후 신탁사에 임대차 계약에 관한 계약 동의를 모두 받아야 임대차보호법 적용 대상이 된다.
등기부등본 외에 건축물대장을 발급하는 절차도 필수다. 특히 아파트 말고 빌라나 다세대주택에 전세를 들어가려면 이 과정을 꼭 거쳐야 한다. 건축물대장에 적힌 용도대로 건물을 쓰고 있는지, 불법이나 무허가 건물은 아닌지 확인해야 한다. 만일 이 사례에 해당한다면 주택임대차보호법 적용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증금 관련 사고가 발생할 경우 정부의 여러 지원책을 받지 못한다.
전세 계약 전에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은 임대인의 국세·지방세 체납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다. 지난달부터 공인중개사가 임대인 동의를 얻어 세금·이자 체납 등 신용정보를 직접 확인할 수 있게 법이 바뀌었기 때문에 이를 미리 확인해 세금보다 보증금이 후순위로 밀리지 않게 해야 한다.
다음은 전세 계약서를 작성할 때다. 일단 공인중개사에게 부탁해 계약 시점의 등기부등본을 다시 발급해야 한다. 그동안 새로운 선순위채권이 생겼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이중 계약을 방지하기 위해 임대인과 직접 대면으로 계약하는 것이 좋다. 대리인을 통해 계약할 때는 위임장, 인감증명서, 임대인 신분증 등과 계좌 명의까지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 가능하다면 모든 사안을 마무리한 뒤 임대인과 영상통화라도 해서 확인받는 절차 또한 고려할 만하다.
특약도 유용하다. 계약서를 쓸 때 ‘집주인의 국세 체납 등이 확인되면 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 ‘집주인 명의가 바뀌면 계약을 해지하고 보증금을 돌려준다’ ‘계약 직후 임대인이 집을 담보로 대출받으면 계약을 취소한다’ 등 문구를 넣으면 좋다. ‘보증보험이 반려되면 계약을 취소한다’라는 특약도 활용할 수 있다. 다만 주의할 점은 막상 전세 소송까지 붙는다면 승소하는 데 특약이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특약은 어디까지나 세입자 권한을 보호하기 위한 보조 장치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계약서를 작성한 후 이사 날짜가 돼서 가장 먼저 할 일은 집이 확실히 비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이 과정은 꼭 잔금을 치르기 전에 거쳐야 한다. 전세사기꾼의 주요 수법 중 하나가 여러 명의 세입자와 계약을 맺은 뒤 보증금을 들고 도망가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또 잔금을 납부하기 전에 등기부등본을 다시 한 번 확인해 주택 관련 권리 상황에 변화가 있었는지 살펴보는 것도 필요하다.
이사가 끝났다면 전입신고를 하고 확정일자를 받아야 한다. 두 개를 동시에 해야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을 가질 수 있다. 대항력은 보증금 전액을 돌려받을 수 있는 권리인데, 전입신고 이후에 생긴다. 반면 확정일자로 발생하는 우선변제권은 임차한 주택이 경매·공매로 팔릴 경우 낙찰금으로부터 다른 채권자들보다 보증금을 우선 받을 수 있는 권리다. 만일 대항력을 갖췄어도 확정일자가 없다면 경매·공매로 넘어갈 때 법원으로부터 보증금을 받을 수 없고, 반드시 매수인(낙찰자)에게서 받아야 하기 때문에 절차상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이 끝나면 등기부등본을 다시 한 번 발급해 확인하는 것이 좋다. 다시 말해 전세살이를 계획할 때는 해당 주택 등기부등본을 적어도 4번은 확인해야 전세사기 피해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다만 확정일자는 신고 당일이 아닌 다음 날 0시부터 효력이 생긴다는 맹점이 있다. 이런 맹점을 활용한 나쁜 집주인이 계약 당일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근저당을 설정하는 사기도 심심찮게 일어났다. 그렇기 때문에 ‘계약 후 잔금을 지급한 뒤 다음 날까지는 근저당을 설정하지 않는다. 이를 위반하면 임대차 계약이 무효가 되고 임대인은 임차인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라는 식의 특약 조항을 반드시 작성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전세 분쟁이 생겼을 때 다른 특약과 달리 법원에서도 이 특약은 효력이 잘 인정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문가들은 작정하고 임차인을 속이는 전세사기는 걸러내는 데 한계가 있지만, 깡통전세의 경우 세입자가 대비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가장 주요한 방법은 전세보증금 반환보험을 활용하는 것이다.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을 때 보증기관이 돈을 내주고 다음에 구상권을 행사하는 제도다. 계약을 체결한 후에만 가입되기 때문에 그전에 보증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주택인지 확인해야 한다. 또 임차 기간의 절반이 지나면 가입 자체가 안 되는 것도 주의해야 한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 관계자는 “보증보험에 가입했더라도 실제 보증금을 반환받을 때까지 우선변제권을 유지해야 한다”며 “보험금을 받기 전에 다른 곳으로 이사하거나 전입신고를 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심전세 앱을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할 만하다. 임대인(집주인)의 과거 보증 사고 이력, HUG 보증 가입 금지 여부, 악성 임대인 등록 여부, 체납 이력 등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집주인 동의가 필요하다는 점 때문에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