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기사는 돈내고 엘베 타라니”…끊이지 않는 아파트 갑질

최근 한 신축 아파트 단지에서 택배기사에게 엘리베이터 사용료 부과를 결정하면서 갑질 논란이 불거졌다. 입주민들의 격렬한 반대와 부정적인 여론에 부딪히면서 수금 결정은 철회됐지만, 고질적인 갈등 해소를 위한 대책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24일 지역사회에 따르면 지난 13일 세종시 나성동의 한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는 다음 달부터 택배기사에게 공동현관 출입용 카드키와 승강기 사용료를 지급하라고 안내했다. 카드키 보증금은 10만원, 승강기 사용료는 월 1만원으로 산정했다. 아울러 인테리어 공사업체에 대해서는 카드키 보증금 30만원과 엘리베이터 사용료 10만원을 책정했다.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을 살펴보면 공용시설물 이용료 부과 여부는 입주자대표회의가 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아파트는 관리규약에 엘리베이터 사용이 빈번한 비입주민에게는 사용료를 걷도록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 쇼핑을 하는 입주민이 늘어나면서 택배기사의 방문도 잦아지자 사용료를 내라고 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게 된 아파트 입주민들이 의견 수렴이 되지 않은 사안이라며 반발했다. 택배는 입주민 편의를 위한 서비스인데 승강기 사용료를 강제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는 입주민들의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

입주자대표회의 관계자는 “택배기사님이 모든 층을 다 눌러 놓고 배송하기 때문에 승강기 이용이 불편하다는 민원 제기가 있었다”며 “다른 아파트 단지에서도 이용료를 부과하고 있어 이를 근거로 사용료 부과 결정을 내렸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실제로 매경닷컴 취재에 따르면 인근 아파트 단지 두어 곳이 5000원 미만의 승강기 사용료를 받는 것으로 확인됐다. 고층 아파트인 만큼 택배 배송이 시작되면 발이 묶이는 불편함이 있어 요금을 정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주민들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 아파트 입주자 커뮤니티에서는 “어떻게 이 정도로 비상식적인 생각을 할 수 있냐”, “택배 갑질로 기사 떴다”, “솔직히 할 말이 없네요”, “그나마 주민 반대로 철회했으니 다행이다”, “입주자 대표들 다 내려와라”, “왜 부끄러움은 주민들 몫?”, “엘리베이터 늦게 온다고 민원 넣은 분도 반성하시길” 등 분노에 찬 반응이 쏟아졌다.

입주자대표회의는 서둘러 입주민 커뮤니티에 사과문을 업로드하고, 택배기사들에게 부과할 카드키 보증금을 5만원으로 낮췄다. 승강기 사용료는 받지 않기로 했다. 새로운 안건은 오는 26일 정기총회에서 의결될 예정이다.

잊을 만하면 재점화…과거 다산·고덕서도 몸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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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8년 4월 경기도 남양주시 다산동의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부착됐던 안내문. 배송차량 진입 거부로 아파트 단지 앞까지만 배송하기로 한 택배기사를 응대하는 방법이 적혀있다. [매경DB]

이 같은 갑질 사건이 발생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8년 경기도 남양주시 다산동의 한 아파트에서는 택배대란이 일어났다. 택배기사들이 물건을 현관문 앞까지 배달하지 않고 화단 근처 지상주차장에 쌓아 두면서 아파트 입주민들과 대치했다.

이 단지에는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이 거의 없다. 아이들의 안전과 아름다운 조경을 지키기 위해 자동차는 모두 지하에 마련된 주차장으로 들어가도록 지어졌다. 그러나 택배차량은 차고가 일반 차량에 비해 높아 주차장으로의 진입이 불가능했다.

이 아파트 입주민들은 택배회사에게 배송차량을 저상차량으로 교체해 줄 것을 요구했다. 주차장 입구 층고를 올리는 것은 공사비가 많이 든다는 이유로 논의 대상에서 배제했고, 지정된 장소에서 배송물을 받으라는 택배회사의 제안도 거부했다.

여기에 관리사무소에서는 택배기사에게 갑질하는 방법을 알려 주는 안내문을 엘리베이터에 부착해 더욱 날카로운 비난을 받았다. 반면 인근 아파트 단지에서는 거점 배송 방식을 도입해 택배기사들과의 상생을 선택하고, 전북 전주시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택배기사·경비원·청소노동자들을 위해 무료 다과를 비치하면서 더욱 비교 대상이 됐다.

서울시 강동구 고덕동의 한 아파트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아파트 정문과 경비실 앞에 택배상자 1000여개가 놓인 사진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확산하면서 이슈가 됐다. 역시 지하주차장 높이 제한에 택배차량들이 진입로를 통과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아파트 입주민들이 손수레로 배송해 달라며 택배 차량 진입을 금지하자 택배기사들이 반발한 것이다.

이 단지는 5000세대에 육박하는 지역 내 대장주였다. 결국 이 단지는 저상차량과 배송로봇을 도입하기로 합의하면서 갈등을 어느 정도 봉합했다. 배달원들이 드롭존에 물건을 가져다 놓으면 자율주행 능력을 갖춘 배송로봇이 가정으로 배달한다. 아직은 일부 품목에만 제한적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앞으로 모든 택배를 전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게 될 전망이다.

지하주차장을 택배차량이 접근할 수 없도록 설계한 건설사도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근본적으로 주차장법을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기도 했다. 당시 주차장법은 지하주차장의 층고를 차로부분 2.3m, 주차부분 2.1m 이상으로 규정했다. 그렇다보니 사업자들이 법적 하한선에 맞춘다는 지적이었다.

이에 국토교통부는 지상공원형 아파트의 지하주차장 최저 층고 기준을 2.7m로 설정하는 주택건설 기준 등에 관한 규칙을 개정했다. 지하주차장 재시공을 할 수 없는 단지들에는 지방자치단체가 어르신들이 소일거리를 하며 용돈을 벌 수 있는 실버택배를 제안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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