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풀렸을때 진도 확 빼야죠”… 목동 주말마다 ‘재건축 설명회’
서울 양천구 목동에 위치한 양천문화회관에선 최근 주말마다 ‘재건축 사업 주민설명회’가 열리고 있다. 목동 12단지 재건축준비위원회(재준위)는 지난 14일 이미 개최했고, 목동 8단지 재준위는 오는 28일 이곳에서 설명회를 진행한다. 수백명에 달하는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목동청소년회관이나 인근 교회도 재준위의 대관 예약을 속속 받고 있다.
주말마다 목동 주민들이 모이게 된 건 최근 이 곳 노후 아파트 단지들이 무더기로 안전진단 통과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7개 단지가 한꺼번에 재건축 가능 통보를 받다보니 ‘정비계획 수립’이란 후속 절차를 경쟁적으로 밟고 있다. 정비계획을 짜려면 주민 60% 동의가 필요하기에 설명회를 열어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다.
한 목동 재준위 관계자는 “구청에서 한꺼번에 다 정비계획 입안절차를 진행할 수 없으니 빨리 동의서 걷어서 접수해야 한다는 인식이 퍼져있다”며 “순서대로 진행할테니 진도를 최대한 빼야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재건축에 우호적일 때 심의 하나라도 더 빨리 통과하자는 주민들의 목소리가 많다”고 덧붙였다.
정부의 재건축 안전진단 완화 방침에 맞춰 노후 재건축 단지들이 속도를 높이고 있다. 원자재 가격 급등과 고금리 등 외부 환경이 녹록치 않은 탓에 당장 사업을 진행하기는 어렵지만 규제 완화 흐름에 맞춰 최소한 첫 관문인 안전진단은 마무리하겠다는 계산으로 풀이된다.
19일 매일경제신문 취재에 따르면 서울에서 안전진단 절차를 진행 중인 아파트는 50곳이 넘는 곳으로 나타났다. 노후 재건축 단지가 밀집한 노원구의 경우 예비안전진단을 마친 30개 단지, 정밀안전진단을 추진 중인 2개 단지를 포함해 32개 단지가 안전진단 절차를 밟고 있다. 대표적 재건축 단지인 양천구 목동신시가지아파트 9, 11단지 역시 관련 절차를 진행 중이다.
강남권에선 송파구 가락우창과 풍납미성, 풍납극동, 한양1차, 올핌픽선수기자촌 아파트의 안전진단 통과 가능성이 높다. 강남구는 수서 신동아와 일원목련 등 11개 단지가 안전진단을 준비중이며, 서초구 노후 단지인 현대, 삼풍, 한신서래, 양재우성, 잠원한강 등 5개 단지도 안전진단 절차를 밟고 있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재건축 첫걸음인 안전진단을 통과하지 못해 정비사업이 정체된 대규모 단지가 상당히 많았다”며 “재건축 아파트 입주 물량이 도심 공급 물량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만큼 도심 물량 공백 최소화 측면에서 안전진단을 조속히 통과하는 것은 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혔다.
지자체에서 정비사업을 적극 지원하는 점도 재건축 추진 단지에게는 긍정적인 요인이다.
서울시는 노후 단지들이 대거 안전진단 문턱을 넘어 앞으로 신속통합기획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자문방식(패스트트랙)’을 새로 도입하기도 했다. 신통기획은 서울시와 민간이 재개발·재건축 초기 단계부터 개발 계획안을 함께 마련해 심사 기간을 줄이는 제도다.
그 전까진 서울시가 직접 기획한 계획 방향을 민간에 제시하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하지만 앞으로는 지구단위계획이나 주민제안 계획이 있는 지역은 자문방식으로 신통기획안을 마련할 수 있다. 기초조사나 기획설계 용역 발주 과정이 없기 때문에 계획 수립 기간이 확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노원구청은 지난 17일부터 재건축 안전진단 비용 지원 조례 개정을 촉구하는 주민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안전진단 비용을 구에서 먼저 지원하고 준공인가 전에 환수할 수 있도록 서울시 조례를 개정해달라는 것이다. 노원구청은 재건축·재개발 신속추진단도 만들어 운영 중이다. 양천구청도 지난 11일 재건축·재개발 사업을 신속하게 추진하겠다며 구청장 직속으로 도시발전추진단을 신설했다.
강서구는 최근 재개발·재건축을 추진하는 ‘원도심개발팀’과 서울시 모아주택과 관련된 ‘모아타운팀’을 신설했다. 인근에 김포국제공항이 위치해 고도제한 문제가 항상 이슈가 됐던 점을 고려해 ‘고도제한 완화지원팀’도 만들었다. 광진구 역시 최근 재건축·재개발 전담지원 2개팀, 소규모 사업팀 1개를 신설했다.
다만 이같은 규제 완화가 즉각적인 공급 물량 확대로는 이어지지 않을 전망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고금리 등을 감안할 때 지금은 사업이 당장 이뤄지기는 힘든 시점”이라며 “최근 정부 정책이 ‘원활한 공급’에 중점을 두는 것은 맞지만 이는 장기적 관점에서 시장 상황이 좋아졌을 때 이야기고, 당장은 건설사나 시행사 등 공급자의 숨통을 트이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밝혔다.
최근 부동산 시장은 고금리 영향으로 침체에 놓여있지만 전문가들은 부동산 시장이 다시 상승전환할 시기가 올 것으로 보고 있다. 상승기에 맞춰 안전진단을 마친 단지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재건축을 추진할 경우를 대비해 정부가 체계적인 정비사업이 이뤄질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동시다발적으로 재건축 사업이 이뤄지면 전·월세 시장이 불안해질 가능성이 높지만 이와 관련된 대책이나 언급이 없다”며 “종합적인 이주대책을 고려해 재건축 로드맵을 만들지 않을 경우 훗날 시장이 좋아졌을 때 이주대란으로 인한 전·월세 가격 상승을 막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