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전세’ 빌라 500채 팔고 튄 집주인…보증금만 1000억 달해
다세대주택 건축업자인 A씨는 그동안 주택 수십 채를 지어 500여 건의 전세계약을 맺었다. 그가 임대차계약으로 받은 보증금은 1000억원으로, 대부분 전셋값이 매매가보다 높은 이른바 ‘깡통전세’ 계약이었다. A씨는 500여 건의 전세계약을 체결한 뒤 B씨에게 전량 명의를 넘긴 후 돌연 잠적해버렸다. A씨는 B씨에게 수수료까지 지불하며 이 깡통전세 주택들을 넘겼으나 B씨는 임차인들에게 보증금을 돌려줄 능력이 없는 무자력 임대인이었다. 100여 가구가 임대차계약 기간 종료 이후에도 총 300억원에 달하는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주택도시보증공사(HUG)로부터 대위변제를 받았다.
아파트 한 동을 통째로 소유한 임대인 C씨는 담보대출이 연체돼 은행에서 경매가 실행된다는 예고를 받았다. 그러나 C씨는 공인중개사와 짜고 해당 사실을 숨긴 채 임차인 30여 명과 임대차계약을 체결해 보증금을 가로챘다.
D씨는 악성 채무자로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에 가입이 금지된 임대업자다. 보증보험 가입이 안 돼 임차인 모집이 어렵게 되자, 지인인 E씨에게 주택을 매도했고 E씨 명의로 임대차계약을 체결한 후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았다.
전세사기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 특히 금리 급등기를 맞아 집값 하락세가 뚜렷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깡통전세’에 따른 전세사기 위험이 더욱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깡통전세란 주택담보대출금과 전세보증금을 합친 금액이 주택 매매가격과 비슷하거나 더 높아 임대차계약 종료 후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이 큰 경우를 말한다.
HUG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 사고 금액은 3407억원으로 상반기 기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중 위 사례와 같이 정확한 시세를 알 수 없는 연립·다세대주택(빌라)에서 발생한 사고 금액이 2054억원으로 다수를 차지했다.
24일 국토교통부는 위 사례와 같은 전세사기 의심 정보 1만3961건을 경찰청에 제공했다고 밝혔다. 전세사기 의심 사례 중에는 임대차계약 직후 대량의 매수·매도가 이뤄졌거나, 전세가율 100% 이상으로 다주택을 계약한 사례 등 국토부가 자체 실거래 분석을 통해 전세사기로 의심되거나, 이미 경찰이 단속·수사 진행 중인 사건과 관련한 정보가 1만230건으로 다수를 차지했다.
이 같은 행위를 한 임대인은 모두 825명으로, 이들이 받은 보증금은 총 1조581억원에 달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빌라와 같은 경우 정확한 시세를 알 수 없다는 점을 악성 임대인들이 악용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아파트와 같은 공시가격제도가 도입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