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단지랑 합치면 우리만 손해”…둘로 쪼개진 분당시범 재건축
1기 신도시 분당에서 선도지구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시범단지가 둘로 쪼개져 재건축을 추진 중인 것이 확인됐다. 정부는 통합 재건축에 참여하는 단지가 많을수록 선도지구 선정에 유리하도록 평가 방식을 정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이런 구상이 통하지 않는 셈이다. 통합 규모가 늘어날수록 주민 동의율을 높이기 어렵고, 갈등 소지가 커질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23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분당 시범아파트 4개 단지 중 2곳인 삼성한신과 한양 아파트는 최근 재건축추진준비위원회를 출범했다. 분당 시범아파트는 삼성한신, 한양, 우성, 현대 등 4개 단지, 7769가구로 구성돼 있다. 4개 단지는 연초까지만 해도 재건축추진준비위원회를 결성하고 주민 설명회도 함께 개최하는 등 통합 재건축을 추진해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 분위기가 바뀌며 우성과 현대를 제외한 삼성한신과 한양 두 단지만 통합 재건축을 추진하고 나선 것이다. 선도지구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시범단지 통합 규모가 4개에서 2개로 축소된 건 복합적 요인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우선 삼성한신과 한양의 경우 서현역과 맞붙은 역세권 단지에 속한다. 반면 우성과 현대는 삼성한신과 한양 뒤편이라 역에서 다소 거리가 있다. 노후계획도시 특별법은 철도역에서 반경 500m 이내 역세권은 고밀·복합 개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역세권 단지가 비역세권 단지와 함께 통합개발을 할 경우 재산상 손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주민들 판단이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
조망과 역까지 거리에 따라 재산 가치가 달라지며 통합 재건축이 깨지는 일은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여의도 대표 재건축 단지인 화랑·장미·대교는 통합 재건축을 추진했지만, 한강 조망 등을 두고 한강 조망권 등 문제로 주민들 간 견해차가 커 단독 재건축으로 선회하기도 했다. 다만 1기 신도시 같은 노후계획도시는 도시 전체 대개조가 필요한 만큼 정부가 안전진단 면제 등 특례를 부여하며 통합 재건축 인센티브를 강화했다. 그런데도 이해관계 조정이 쉽지 않아 통합 재건축 추진이 순탄치만은 않은 것이다.
시범단지 규모가 지나치게 큰 점도 통합 재건축 동력을 약화하는 요인이다. 국토부는 분당의 경우 선도지구로 8000~1만2000가구를 선정키로 했다. 만약 4개 단지가 통합 재건축해 선도지구 공모에 참여하면 시범단지 한 곳만으로 분당 물량이 다 찰 수 있다. 선도지구 선정 권한을 가진 성남시도 한 곳만 선도지구로 정하기는 부담이다.
국토부는 선도지구 평가에서 통합 단지 수와 세대 수에 각각 10점씩 부여해 규모가 클수록 유리하도록 항목을 구성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규모가 커질수록 주민 동의 확보는 더 어려워 통합 규모가 커질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이종석 삼성한신·한양 통합재건축 추진위원장은 “통합 규모가 커질수록 오히려 주민 동의율은 낮아질 수 있어 선도지구 선정에는 불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분당의 또 다른 재건축 추진 단지인 상록우성도 인근 라이프와 통합하지 않고 단독 재건축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 단지 관계자는 “인근 단지와 규모 면에서 차이가 있고, 통합 추진시 주민들의 재산권이 침해될 수 있다는 판단에 단독 재건축을 결정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