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50배 뛰었다고?”…옛날이나 지금이나 ‘서울살이’ 극악이네

조선시대의 부동산 거래는 어땠을까. 상가로 추정되는 한 조선시대 가옥은 주인이 70여년간 12차례 바뀌는 등 매매거래가 활발했다. 이 중엔 현재의 재건축과 같은 가옥 개조를 통해 집의 가치를 크게 높여 되파는 사례도 있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최근 소장 유물 자료집인 ‘조선후기 한성부 토지·가옥 매매문서1’을 발간했다고 1일 밝혔다. 자료집에는 조선후기 서울의 중부와 동부 지역에서 거래된 토지와 가옥 매매문서 304점이 수록됐다.

자료집엔 장기간 거래된 문서도 다수 수록돼 주목된다. 동대문 바깥 한 농지는 1609년부터 1765년까지 150년간 36번의 거래가 이뤄졌다. 거래 문서만 12m에 이른다.

한성부 토지·가옥 매매문서 원본
한성부 토지·가옥 매매문서 원본. [서울역사박물관 제공]

서울 종로의 한 상가로 추정되는 가옥은 1730년부터 1802년까지 총 12차례 매매되기도 했다. 초가집 등으로 이뤄진 이 가옥은 1730년엔 은화 60냥, 2년 뒤인 1732년엔 은화 65냥에 거래되다, 이듬해인 1733년엔 갑자기 140냥으로 뛰었다.

불과 1년만에 가격이 2배 이상 뛴 이유는 다름아닌 가옥 개조에 있었다. 1732년 해당 가옥을 사들인 이 모씨는 초가집 11칸, 기와집 4칸, 행랑(나란히 이어진 가옥) 2칸 등으로 구성돼있던 이 가옥을 기와집 13칸으로 개조했다. 그리고는 이듬해인 1733년 자신이 사들인 가격(은화 65냥)보다 2배가 훨씬 넘는 은화 140냥에 김 모씨에게 팔았다. 송철호 서울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는 “낡은 초가집을 허물로 기와집을 크게 새로 지었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설명했다. 현재로 치면 재건축을 통해 건물 가치를 끌어올린 셈이다.

서울역사박물관
서울 종로의 한 상가로 추정되는 가옥은 1730년부터 1802년까지 총 12차례 매매거래가 이뤄졌는데, 가옥 개조를 통해 집값을 2배 이상 올린 사례도 발견됐다. [서울역사발물관 제공]

조선 말기에는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집값이 폭등한 사례가 흔했다. 일례로 효령대군 후손이 소유했던 종로의 한 기와집은 1724년 은화 300냥에 거래됐는데, 19세기 중반까지 서서히 상승하더니, 19세기 말에 이르러 동전 2만8000냥(은화 약 1만4000냥)으로 폭등했다. 150여년간 가격이 50배 이상 뛴 셈이다. 조선 말기 흥선대원군의 화폐정책인 ‘당백전’으로 인한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노비가 자신의 집을 매도하는 사례도 있다. 신분을 사비(私婢, 개인 소유의 여종)로 기록한 효생이라는 인물은 지금의 종로 공평동 부근에 기와집 5칸, 초가집 3칸의 집을 소유했다가 은화 150냥에 매도했다. 노비가 경제활동을 했을 뿐 아니라 상당한 재산을 소유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자료집을 살펴보면 노비 외에도 여성, 군인, 중인 등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부동산을 거래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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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 김조이와 노비 효생이 자기 소유의 부동산을 매도하고 서명한 부분을 확대한 사진. [서울역사박물관 제공]

조선시대에도 부동산은 백성들의 가장 중요한 재산이었다. 이에 부동산을 매매할 때 반드시 계약서를 작성해 소유권 이전을 분명히 했다. 또한 한성부에서는 부동산 거래를 관리하기 위해 거래 당사자와 증인에게 사실을 확인하고 공증문서를 발급했다고 서울역사박물관 측은 설명했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선 올해 중으로 한성부 서부·남부·북부 소재 토지·가옥 매매문서 200여 점을 수록한 소장 유물 자료집 2편을 이어서 발간할 예정이다. 자료집은 서울역사박물관 내 기념품점과 서울특별시청 지하에 있는 서울책방에서 구매할 수 있고, 서울역사박물관 누리집(https://museum.seoul.go.kr/)에서 무료로 열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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