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밀어줄때 재건축 빨리하자”…리모델링 하려던 곳도 ‘유턴’
“내 집이 낡아서 못살겠다는데 안전진단이라는 절차때문에 주민들만 속끓이고 살았는데 (오늘 발표 보고)아주 속이 다 시원합니다. 이제는 주민들끼리 합심해서 새아파트 만들 일만 남았네요.”(노원 하계동 아파트 보유자 김모씨)
10일 정부가 재건축 재개발 규제를 완화하는 패스트트랙 정책을 발표하자 부동산 실수요자들은 “이제 정비사업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재건축, 재개발,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단지들은 “정부가 도와줄 때 빨리 하자”며 정비사업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 사업계획을 다시 점검하고 나섰다.
이날 서울 동작구청에 따르면, 지난해 예비안전진단을 통과한 서울 동작 명수대현대는 정밀안전진단을 위해 업체를 선정했다가 취소했다. 정부가 지난해 연말부터 안전진단 없이도 재건축 추진을 가능토록 하겠다고 예고함에 따라 전략을 수정하기 위해서다. 서울 동작 흑석동 한 주민은 “안전진단 비용이 부담이었는데 정부가 안전진단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겠다고 하니까 우선 추진위를 제대로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겠냐”며 “이제까진 빨리 안전진단부터 통과시키고 보자는 입장이었다면 이제는 사업 추진을 꼼꼼히 살펴보자는 분위기”라고 했다.
재건축 안전진단 모금 때문에 애를 먹은 단지들도 “가장 큰 장애물은 피했다”는 분위기다. 정밀안전진단을 받으려면 2억~3억원이 드는데, 이를 위해 소유주들로부터 모금 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서울 수서 삼익, 동작 한강현대, 하계 청솔아파트를 비롯한 수도권 단지들이 정밀안전진단 신청을 위해 모금중이었다.
서울 노원구의 준공 32년차 아파트를 소유한 이모씨는 “재건축하면 좋다고 해도 (안전진단) 돈 내라하면 50만원도 아까워 안낸다. 이제는 모금도 충분한 시간을 갖고 할수 있어 돈 때문에 안전진단 신청 전부터 갈라서는 일은 적어질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재건축 패스트트랙을 통해 안전진단을 더욱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1월 안전진단 평가에서 구조안정성 비중을 줄이고 주거환경 위주로 평가항목을 수정한데 이어, 앞으로 “노후도와 생활불편 중심으로 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준공 30년을 넘는 아파트는 주민들 불편이 크다면 웬만하면 통과시켜주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시장에서는 사실상 ‘안전진단의 폐지’로 받아들인다. 경기도 분당 한 아파트 입주민은 “소유자들이 집이 낡아서 못살겠다는데 정부가 안전진단이라는 명분으로 가로막는게 말도 안됐다. 이참에 다른 재건축 대못들도 뽑아야한다”고 했다.
수도권에는 준공 30년 이상 아파트 중 안전진단 미통과 단지는 서울 노원, 강남, 강서, 도봉, 경기 안산, 수원, 광명, 평택에 몰려있다. 이지역에서는 안전진단이 워낙 까다로워 엄두도 못냈는데, 이제 안전진단 없어도 재건축 추진이 가능해 사업성 높은 곳들 위주로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리모델링 추진 단지가 많았던 1기 신도시에서는 노후도시특별법에 이어 이날 발표 이후 재건축으로 선회하는 단지가 많아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평촌에서 이미 리모델링 허가를 받았던 목련2단지 조합원은 “재건축 벽이 높아 리모델링을 시작했던 건데 이제는 뭐하러 하겠냐”며 재건축으로 선회해야한다고 말했다.
다만 이는 특별법상 재건축시 용적률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노후도시 단지들에만 국한된 현상일 뿐 나머지 지역에서 리모델링을 추진하던 단지들엔 큰 변화가 없을 전망이다. 당초 리모델링을 택한 이유가 안전진단 문턱이 높은 것보다도 용적률이 200%를 넘겨 재건축보다 사업성이 낫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업성이다. 서울 노원, 경기 수원처럼 수도권의 30년 넘은 구축 아파트들은 용적률이 200% 안팎으로 획기적인 용적률 상향 없이는 수익성이 안나는 상황이다. 게다가 지난 2~3년간 공사비가 급등해 기존 재건축 추진 단지들도 조합과 시공사간 공사비 갈등으로 사업이 좌초되고 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 원장은 “이제 안전진단은 형식적으로만 존재하게 될 것”이라며 “앞으로 중요한 것은 사업성이다. 용적률과 분담금을 따졌을 때 사업성이 나오고 주민들이 분담금 낼 여력이 있는곳, 재건축 의지가 있는 곳은 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했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노후도시특별법 대상 뿐만 아니라 서울의 일반 재건축 단지도 용적률을 올려주고 재건축초과이익환수도 유예하는 조치가 동반돼야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정비사업 관건은 인허가보다 개별 조합원들의 자금여력”이라며 “(1기 신도시의 경우) 용적률 상향 인센티브가 각 단지별로 얼마나 적용되는지는 아직 미정이기 때문에 막연하게 미래가치를 기대하는 것은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안전진단 완화는 도시정비법 개정사항이다. 국회 여야 합의가 없으면 실거주의무 폐지가 통과되지 않는 것처럼 ‘불발’될 수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한다.
재개발 사업도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는 재개발 노후도를 완화하고, 접도율과 밀도를 개선하겠다고 했다. 접도율은 재개발 구역 안에 전체 건축물 중 4m 이상 도로에 접한 건축물 비중을 뜻한다. 도로에 접한 건축물이 별로 없을수록 기반시설 정비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재개발이 쉬워진다. 다만 재개발 노후도 요건을 낮춘데 대한 우려도 있다. 주민 갈등이 커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