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반납해도 될까요”…애써 분양받은 땅 외면하는 건설사들, 왜?
“일부 입지 좋은 곳엔 청약 수요가 몰리고 있지만 그 외 지역은 여전히 불확실성이 큰 상황입니다. 분양이 잘 이뤄질 것 같지 않아 낙찰 받은 공공택지 반납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건설사들이 계열사를 동원해 벌떼입찰까지 나섰던 공공택지가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있다. 건설사와 시행사가 분양대금을 내지 못해 연체 규모가 급증하는 한편 미분양을 우려해 낙찰 받은 택지를 반납하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
4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국회에 제출한 ‘공동주택용지 해약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0년 1월부터 올해 5월까지 3년 5개월간 건설사가 공동주택용지(아파트 용지) 분양 계약을 체결한 뒤 해약한 경우는 총 4건이다. 이 중 3건은 작년 말부터 올해 초 부동산 시장이 침체하고 미분양이 급증하던 시기에 해약이 이뤄졌다.
중견 건설사 A사는 LH로부터 2020년 5월 낙찰 받은 안성 아양의 공동주택용지를 올해 3월 반납했다. A사는 안성 아양에서 총 2개 필지를 낙찰 받았는데, 미분양 우려가 커지자 이 중 하나를 반납하기로 결정했다. A사 관계자는 “부동산 경기 침체와 원자재값 상승, 분양성 담보 부족 등 이유로 토지를 반납했다”고 설명했다.
LH가 공급한 토지는 건설사의 단순 변심으로 반납하기는 어렵다. 다행히 A사가 낙찰 받은 토지는 계약 당시 ‘토지 리턴’이 가능한 조건으로 입찰이 이뤄져 A사는 위약금 지출 없이 토지를 반납할 수 있었다.
일반 공공택지의 경우엔 이 같은 ‘토지 리턴’ 조건이 없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반납이 불가하다. 하지만 미분양 리스크가 높아지며 LH에 반납을 희망하는 건설사가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중견 건설사 대표는 “공공택지는 분양성이 담보돼 노른자 땅이라고도 불렸지만, 요즘엔 서울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미분양 리스크가 높아 택지를 반납할 수 있을지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건설사들의 자금 사정이 악화되자 낙찰받은 토지에 대한 잔금을 내지 못하는 곳도 발생하고 있다. LH에 따르면 올해 5월 기준 연체가 발생하고 있는 공동주택용 필지는 총 23곳, 연체금은 6500억원에 달한다. 연체가 발생할 경우 건설사·시행사는 연 8.5%의 이자를 부담해야 한다. 5월 기준 6개월 이상 연체가 발생한 사업장은 8곳이다.
공공택지에 대한 잔금 연체는 시·도를 가리지 않고 전국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파주 운정, 성남 복정, 경북 경산대임, 세종 등 전국 사업장에서 건설사나 시행사가 잔금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처럼 연체가 쌓이게 되면 결국엔 계약 해지에 이를 수 있다. 작년 11월 발생한 택지 계약 해약은 금융기관 요청 또는 매수자 귀책으로 인해 발생했다. LH 관계자는 “건설사나 시행사의 단순 변심으로 인한 해약은 불가하지만, 연체 기간이 길어지면 LH가 여러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공공택지 계약 해지는 부동산 경기가 악화될 때 주로 발생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은 2010년에도 건설사들이 땅값을 제때 납부하지 못하며 연체금이 2조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원자재값 상승과 미분양 우려로 건설사들이 사업을 접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향후 신규 주택 공급 부족이 심화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