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들어올때 노젓자”…재건축 숙원 풀이 나서는 노후 아파트
정부가 재건축 규제를 완화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전역에서 정비사업이 봇물 터지듯 추진되고 있다.
안전진단 신청은 물론 정비구역 지정 등 사업 추진을 앞당기기 위해 속도 경쟁에도 불이 붙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정비사업 활성화가 서울 등 도심지역의 주택 공급 확대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한꺼번에 사업이 몰릴 경우 공급과잉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속도조절이 관건이라고 입을 모은다.
19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시는 이달 중 아파트지구였던 여의도 일대의 용도지역 상향과 복합개발 등을 골자로 한 개발계획(지구단위계획)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앞서 서울시는 14개 아파트지구를 폐지 또는 축소하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해 말 여의도 시범아파트가 최고 65층 높이의 신속통합기획안이 확정되며 지구단위계획 수립에 들어간 데 이어 역시 신속통합기획으로 사업이 추진되는 한양아파트도 최근 3종 일반주거지역에서 상업지역으로 종상향이 확정되면서 재건축을 본격화했다.
또 그동안 사업이 정체돼 있던 여의도 미성아파트가 재건축 재추진에 나선 데 이어 수정·삼익·은하·장미·화랑 아파트 등은 추진위 설립을 위한 동의서 걷기에 나서는 등 재건축 사업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준공 후 50년 이상 재건축 사업이 지지부진했던 여의도 일원이 새 정부와 서울시의 적극적인 규제완화 덕에 사업 추진에 속도가 붙고 있다. 용적률, 층수 등 새 정부의 규제 완화 기조로 이번에는 반드시 재건축을 해야 한다며 주민들의 의지도 강하다.
양천구의 경우 작년 12월 정부가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합리화 방안을 발표한 이후 올해 1월 목동 신시가지 3·5·7·10·12·14단지 및 신월시영, 지난달 말 신시가지 1·2·4·8·13단지 등 12개 단지가 각각 무더기로 안전진단을 통과하며 재건축 첫걸음을 뗐다.
아직 안전진단을 통과하지 못한 신시가지 9·11단지도 조만간 안전진단을 신청할 예정이다. 현지 중개업소에 따르면 목동 신시가지 아파트의 재건축이 본궤도에 오르면서 분위기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지난 1월부터 재건축 정비구역 지정 동의서 징구에 나선 목동 7단지는 이르면 이달 말 신탁 사업 방식과 조합 방식에 대한 비교 설명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추진을 서두르는 이유는 14개 단지(2만6000여가구) 규모의 목동 택지개발지구가 동시에 재건축에 들어갈 경우 사업이 상당히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특히 신속통합기획으로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정비구역 지정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송파구의 30년 이상된 중층아파트 단지들도 재건축에 나섰다. 먼저 올림픽선수기자촌 아파트(약 5500가구)가 지난달 안전진단을 통과했고 올림픽훼밀리타운(약 4500가구)도 지난 1월 안전진단 문턱을 넘었다. 아시아선수촌도 최근 안전진단 재추진에 돌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강북구에서 재건축 추진 단지가 밀집한 노원구에서는 상계동은 물론 중계동으로 재건축 바람이 번져 안전진단 신청이 줄을 잇고 있다.
서울시와 정비업계는 1월 말 기준 서울에서 안전진단을 추진중인 193개 단지 중 최근까지 38개 단지 약 6만가구가 안전진단을 통과한 것으로 추산한다. 서울시가 올해 7월부터 시공사 선정 시기를 종전 사업시행인가 이후에서 조합설립인가 이후로 앞당기면서 시공사 선정 경쟁에도 불이 붙었다.
과거 안전진단에 도전했다가 통과하지 못한 단지들도 재도전을 준비하고 있어 안전진단 통과 단지는 더 늘 것으로 전망된다. 강남구 일원동 수서1단지가 지난달 예비안전진단을 통과했다.
광진구 광장동 광장극동아파트는 2020년 이후 3년 만에 다시 정밀안전진단을 신청했다. 서초구 법조타운 인근 2390가구 대단지 서초구 서초동 삼풍아파트와 강동구 명일동 고덕주공5단지는 정밀안전진단 비용을 모금하고 있다.
서울 빌라촌은 ‘모아타운’ 관심…“속도조절 필요”
대규모 재개발이 어려운 서울의 소위 빌라촌에서는 모아타운 사업 추진이 줄을 잇고 있다.
모아타운은 서울시가 대규모 재개발이 어려운 10만㎡ 이내 노후 저층 주거지를 하나로 묶어 정비하는 소규모 주택정비 사업(가로주택정비사업)으로, 2021년부터 공모를 시작해 대상지 65곳을 선정한 상태다.
또 이달부터는 수시 신청으로 전환하고, 2025년까지 대상지 35곳 이상을 추가로 선정한다는 방침이어서 모아타운 대상지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정비업계의 한 관계자는 “노후 다세대·연립 밀집지는 재개발이나 재건축이 어려웠는데 시가 모아타운 추진으로 용도지역 상향을 통한 용적률 확대, 층수완화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하니 너도나도 신청하겠다는 분위기”라며 “서울 비강남권의 웬만한 노후 빌라촌에서는 모아타운 추진위가 설립되고 있다”고 말했다.
마포·은평구 등 역세권 일대 노후 주거지역에선 역세권 장기전세주택(시프트) 사업 신청이 늘고 있다. 시가 역세권 준주거지역의 35층 층수 규제를 없애고 용적률은 최대 500%에서 700%까지 높여주기로 하면서 종상향에 따른 사업성 개선 덕분이다.
전문가들은 도심내 주택공급이 부족한 상태에서 정비사업을 활성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동시다발적으로 정비사업이 추진되는 것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놓는다.
또 안전진단 규제 완화로 서울 도심 핵심지에 부족하던 주택 공급의 물꼬가 트였지만 금리 인상과 공사비 상승,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등 변수도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금리가 높으면 사업비 대출에 따른 이자 부담이 커진다. 원자재 가격이 급등해 공사비도 계속해서 오르는 추세다. 그만큼 주민들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커지는 셈이다.
이로 인해 일부 단지는 신탁 방식으로 재건축을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최근 공사비 갈등에다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등을 고려하면 정비사업을 추진하더라도 결국에는 사업 추진이 잘될 곳과 안 될 곳이 가려질 것”이라면서도 “송파구와 목동·여의도·상계동 등 대규모 재건축 추진 지역에서는 주변 전세·매매시장에 부작용이 생기지 않도록 과거 5개 저밀도지구 재건축 때처럼 관 주도의 시기조절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