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셋값 밑으로도 안팔려” 무너지는 빌라

5년 전 서울 빌라를 매수한 김 모씨는 올해 결혼을 앞두고 이사를 가기 위해 빌라를 매물로 내놓았다. 70곳 넘는 공인중개업소에 중개를 의뢰했지만 집을 보러 온 손님은 한 명뿐이었다. 김씨는 “산 가격에 내놓았지만 문의는 딱 3건이 왔다. 주변에서는 ‘빌라를 사면 절대 못 판다’고 하고, 전월세 놓으려는 투자 수요도 없다”고 한탄했다.

빌라 시장의 봄은 오지 않고 있다. 수도권 아파트 매매가가 상승 추세로 돌아섰고 서울 아파트는 전고점을 넘보는 단지가 나왔지만 빌라 시장은 연일 악화일로다. 2022~2023년 전세사기와 역전세 등으로 초토화된 데다 거래절벽 속에서 전세가와 매매가가 동시에 내림세다. 경매 시장에서도 낙찰률이 10%대로 주저앉았다. 빌라 소유자들은 “아무도 찾지 않고 가격은 계속 내려가는 최악의 상황으로 가고 있다”면서 “빌라 시장을 정상화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14일 경매전문업체 지지옥션에 따르면 2021년 32%에 달했던 서울 빌라 경매 낙찰률은 지난해 10%대로 떨어졌다. 낙찰률이 10%라는 것은 경매에 10건이 나오면 1건만 낙찰된다는 의미다. 2020년 서울 빌라 낙찰률은 31%, 2021년 30%였다. 그러다 이듬해부터 빌라 경매 건수가 늘더니 2022년 한 해 서울 빌라 경매 진행 건수가 5384건, 2023년 1만1339건으로 급증했다. 경매 물건은 쏟아지는데 낙찰이 잘 안 되면서 낙찰률은 2022년 17%, 2023년 10%로 추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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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들어서는 그나마 낙찰률이 소폭 올랐다. 1월 낙찰률 14.9%, 2월 9.8%, 3월 13.6%였다. 이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대항력을 포기한 빌라 경매가 늘었기 때문이다. HUG는 깡통전세 빌라의 보증금을 갚아준 후 채권을 회수하기 위해 강제경매를 신청한다. 그런데 보증금액이 크다 보니 이를 인수해야 하는 낙찰자들이 낙찰을 안 받는다. 그러다 보니 HUG는 손해를 보더라도 보증금 일부라도 회수하기 위해 법원에 대항력 포기를 신청하고 있다. 이주현 지지옥션 선임연구원은 “이렇게 인수 조건이 변경된 경매는 낙찰자가 전세보증금보다 싸게 물건을 받아도 전세보증금 차액을 부담하지 않아도 된다. 요즘 이런 물건이 나오면서 낙찰률이 조금 올랐다”면서 “그렇더라도 빌라 낙찰률은 과거에 비해 크게 떨어진 상태”라고 했다.

빌라 시장이 초토화된 이유는 복합적이다. 전세사기 이후로 빌라 전세 수요가 급감했다. 빌라 임대차 시장은 전세 위주에서 월세 중심으로 재편 중이다. 경제만랩이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올해(1월 기준) 전국 빌라 전월세 거래량 2만1146건 중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56.2%로 정부가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11년 이후(매년 1월 기준) 가장 높다. 빌라 전세를 공급하려는 수요도 없다. 빌라 전세 시세는 전세보증보험 한도로 결정되는데, 정부가 깡통전세를 막기 위해 빌라 보증한도를 공시가의 150%에서 126%로 축소했다. 빌라 전세보증금은 보증보험 한도에 맞춰지기 때문에 사실상 전세 시세를 낮추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기존 전세를 공급 중이던 빌라 보유자들은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해 ‘부도 위기’다. 집을 팔아서라도 보증금을 돌려주고 싶지만 집이 팔리지도 않아 진퇴양난이다.

아파트보다 저렴하게 거주하려는 빌라 실수요는 아예 실종이다. 문재인 정부 때 각종 규제로 ‘실거주 한 채’를 장려한 정책 탓이 크다. 1주택자만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고, 2주택자부터는 취득세율이 중과된다.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소형 신축 빌라는 청약 무주택자 적용 혜택을 주더라도 일단 빌라를 사면 나중에 안 팔려 다른 집으로 갈아탈 수 없다”고 했다.

전국비아파트총연맹 관계자는 “빌라도 엄연한 주거의 한 형태인데, 이렇게 망가지도록 놔두면 서민들 주거사다리가 완전히 박살나게 된다. 아파트 쏠림이 더욱 심해지면서 서민들 주거 부담이 커지고 있다”면서 “빌라 시장 정상화에 정부가 관심을 기울여 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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